만원버스 보고서 - 김희철

2012. 7. 14. 10:39좋은글

 

    만원버스 보고서 - 김희철 뒷좌석 통로에 포위당하고 뿌리 내리려고 하지도 않는데 발 디딜 곳이 없다. 고무풍선처럼 매달린 채 떠밀려서 간다.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다. 손잡이 위에 손이 겹치고 밀리지 않기 위해 밀고 참새처럼 짹짹거리며 밟는다. 내 발이 밟히지 않기 위해 밟는다. 정류소 하나, 둘, 셋……. 포위망을 탈출할 수가 없다. 내가 내릴 정류소에서도 버스는 멈추지 못하고 그냥 달린다. 완행버스 - 임길택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도 내가 손을 들어도 가던 길 스르르 멈추어 선다 언덕길 힘들게 오르다가도 손드는 우리들 보고는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우리 마을 지붕들처럼 흙먼지 뒤집어쓰고 다니지만 이 다음에 나도 그런 완행 버스 같은 사람이 되고만 싶다 길 가기 힘든 이들 모두 태우고 언덕길 함께 오르고만 싶다 (임길택·아동문학가, 1952-1997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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